
매끈한 곡선 속에 수만 갈래의 실핏줄 같은 균열(빙열)이 얽혀 있다. 최영욱 작가의 캔버스 위 달항아리는 단순한 도자기가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기억이자, 관람객의 삶이며, 우리 모두의 인연(Karma)이다.
약 20년 가까이 달항아리라는 형태를 빌려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최영욱 작가. 그는 캔버스 앞에서 깊은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많은 선을 긋고 지우며 단 하나의 형태를 찾아낸다. 빌 게이츠 재단,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기관이 주목한 그를 만나 작품 세계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들어보았다.




Q.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작가 최영욱입니다. 저는 달항아리의 형태를 빌려 그 안에 삶의 기억과 인연을 담아내는 "카르마(Karma)" 연작을 꾸준히 작업해오고 있습니다. 캔버스 위에 젯소를 칠하고 갈아내기를 반복하며 도자기의 질감을 구현하고, 그 위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관계를 선으로 표현합니다.
Q. 작품을 시작할 때 어떤 과정을 거치시는지 궁금합니다. A. 하얀 캔버스를 마주하면 우선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마음을 최대한 가라앉힙니다. 기분이 차분해지면 그때 형태를 잡기 시작합니다. 마음에 들 때까지 빈 선을 여러 번 긋다가, "이거다" 싶은 한 가닥의 선이 나오면 나머지는 지워내죠.
그 틀 안에 채워지는 그림은 일종의 추상적인 풍경입니다. 구체적인 형상보다는 제 무의식 속에 있는 기억이나 풍경들을 떠올리며 선을 긋습니다. 그러다 어떤 흔적이 남으면 그것을 정리하고 완성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Q. 대중들에게는 "달항아리를 그리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사실 미술 관계자나 갤러리에서 저를 "다랑아리(달항아리)를 그리는 작가"라고 소개할 때면 조금은 정정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저는 달항아리 자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지 달항아리의 "형태"를 빌려왔을 뿐입니다. 그 형상 안에 담긴 내용은 추상적인 것이고, 관람객들이 제 그림을 통해 각자의 삶 속에 있는 기억을 떠올리기를 바랍니다. 도자기라는 물성보다는 그 안의 내용과 기억이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Q. 작가님이 생각하는 예술, 혹은 미술 작품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A. 저는 미술 작품이 반려동물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강아지를 보며 위로를 받듯이, 집에 걸린 그림 한 점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작품을 보며 편안해지고 하루의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마치 엄마가 반겨주거나 반려동물이 꼬리 치며 맞이해주는 것처럼, 힘든 일은 잠시 잊고 "쉬었다가 다시 열심히 살아가야지" 하는 힘을 주는 것이죠. 실제로 제 작품을 소장하신 분들이 "그림이 나를 반겨주는 것 같다", "쉼을 얻었다"고 말씀해 주실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Q. 20년 가까이 작업을 이어오셨습니다. 과거와 현재, 마음가짐의 변화가 있으신가요? A. 처음 10여 년은 욕심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알려질까", "명예를 얻을까" 하는 성급한 마음이 작업에도 투영되었죠.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요.
요즘은 저만의 이야기를 묵묵히 풀어내면,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에 닿고 알려진다는 것을 느낍니다. 자연의 법칙처럼 순리대로 살아가며 작업하려 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이제는 갤러리나 미술관을 넘어, 도심 속 공공미술이나 특정 공간을 연출하는 설치 작업으로 확장해보고 싶습니다. 최근 프리즈(Frieze) 기간에 기업과 협업하여 공간 전체를 제 작품으로 꾸며보았는데, 관람객들이 "따뜻하고 편안했다"는 평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런 공간을 더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작업적으로는 항아리 형태를 없애고, 그 안의 "내용"과 "질감"만 남기는 평면 추상 작업을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
Q. 훗날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A. 거창한 메시지보다는, 정신적인 안정감을 주는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치열한 삶을 살아가다가 제 작품 앞에서 잠시 멈추고 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런 작가가 있었지" 하고 은근하게 떠올려지는,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없으면 왠지 서운한, 그런 편안한 존재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